생활정보

효재처럼2

청주가이버 2008. 9. 28. 22:22

 

햇볕을 찬 삼아 마당에서 즐기다! 효재가 차려준 가을 밥상

삼청동 한옥에서 성북동 길상사 바로 앞에 자리잡은 양옥으로 이사한 효재 집을 기자가 처음 구경 간 날, 8월의 불볕더위가 한창 기승이던 그날 효재는 한증막이 따로 없는 부엌에서 무명 행주를 팍팍 삶고 있었다. 한시도 손이 놀 틈을 주지 않는 그녀는 집 안 곳곳 구경을 시켜주면서도 볕 좋은 마당에 대바구니를 널어 햇볕 소독을 하고 나란히 줄지어 누워 있는 가지가 잘 마르는지 눈길 주느라 바쁘다. 이사 온 새집에서 맞는 첫 가을, 그녀는 더욱 흥이 난다. 여름 끝, 가을 문턱인 요즘 밥상 위의 낭만을 즐기는 일만 남았단다.

효재의 너른 마당에 꽃 자수 놓인 방석 깔고 받아든 가을 밥상은 정갈하고 소박해도 맛을 보면 이만한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바글바글 끓인 애호박된장국에 섬섬한 말린 가지나물, 투명하게 볶아 일품 메뉴가 된 감자채복음까지 효재의 손맛과 이야기가 양념이 된 메뉴다. 은행, 대추, 햇콩 넣고 뽕잎 찻물로 지은 영양솥밥 한술을 뜨니 입 안은 벌써 가을 축제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데 여름이 초복, 중복, 말복으로 또 세 계절로 나뉘니 초봄부터 이듬해까지 12계절이잖아요. 초봄엔 보리싹, 봄 중턱엔 봄나물 해 먹고… 올가을은 내 남은 생에 몇 번째 가을일까 생각해봤어요. 그러니 이 음식들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고마워요. 요샌 다이어트한다고 음식 하나 앞에 두고 스트레스 받잖아요. 이맘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즐기는 멋과 여유가 필요해요. 밥상 위의 음식을 낭만과 서정적 감성으로 준비하는 거죠.”

향기에 취하는 연잎시루떡
시루에 연잎을 두 장 깔아 그 안에 쌀가루를 넣어 쪄내기만 하면 완성이다. 사실 집에서 떡 만든다고 하면 굉장히 손이 많이 간다 생각하는데 이렇게 쌀가루만 담아 익히기만 하면 된다. 쪄낸 떡의 연잎을 찬찬히 벗겨내니 연 향기가 진동을 해 떡에 따로 간을 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효재가 재빨리 떡시루를 마당의 연못에 핀 연꽃 아래 놓고서 너무 예쁘다며 탄성을 지른다.

1 벽면에 자리하고 있는 오동나무 상자와 실꾸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테리어 오브제 역할을 해 효재의 감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2 돌확 테이블과 아이비 한 줄기로 꾸민 이 공간은 손님들과 두런두런 담소 나누는 다실. 꽃그림 있는 광목천을 걸어 운치를 더했다.
3 보자기로 싸매기만 해도 이렇게 예쁜 병과 장바구니로 변신한다.

감자를 볶을 때는 마당의 죽은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으로 볶는데 뒤집개가 아닌 이걸 써야 감자가 부서지지 않는다. 또 일품요리를 낼 때는 올리브유로 볶아 개운한 맛을 살린다고.

칼질 잘해서 일품요리 된 감자채볶음
“여름내 잘생긴 감자를 삶아 먹고 카레에도 넣어 먹고, 여름 끝물도 지나 이맘때 반찬 없는 날 손님오면 내는 음식이에요. 나는 요리할 때 내가 요리사라고 생각해서 칼질부터 어떻게 다르게 할까 고민해요. 이 감자를 최대한 얇게 썰어내는 거예요. 얇게 썰어서 찬물에 담가 전분을 빼고 팬에 볶아요. 여기에 풋고추도 같은 길이로 얄팍하게 썰어 넣고 간은 따로 안 하고 마지막에 새우젓만 넣어요. 칼질만 신경 쓰면 이거 맛본 손님들이 감자잡채라며 너무 맛있다고들 해요. 투명한 감자채볶음이 금세 특별대우를 받는 일품요리가 되는 거죠.”

1 마당 한쪽에 줄지어 매달린 옥수수는 도심 한복판에서 시골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2 재봉틀로 손수 만든 레이스 테이블보를 깔아 근사하게 꾸몄다.


찌개를 올려놓은 툇마루는 사실 삼청동 숍에 있던 것을 가져온 것이다. 새 주인이 집을 다 헐어낸다기에 아까운 마음에 가져와 마당 앞 대리석 디딤돌에 끼웠더니 딱 맞더란다.
손으로 뭉텅뭉텅 잘라 넣어 끓인 애호박된장찌개
“이 애호박된장찌개는 탄산음료나 맥주 마시고 시원한 거랑, 뜨거운 탕에 들어가 시원한 거랑 또 다른 시원한 맛이 있어요. 더운 계절 끝물에 청양고추랑 된장 넣고 애호박이 함께 만들어낸 그 아껴둔 맛이 난 너무 시원하고 맛있더라고요. 호박순이랑 다 익어서 만지면 흐물흐물해지는 애호박을 시골 살 때는 남의 밭에 가서 훑어 와서 이렇게 끓였죠. 남편은 남의 밭에서 따왔다고 뭐라 하는데 그때까지 거기 붙어 남아 있는 것들은 다 같이 먹으라고 두는 거라 괜찮아요. 어릴 때, 추석이 가까워지는 이때쯤 밭두렁 가서 호박순 따오곤 했지요. 칼질도 필요 없이 뭉텅뭉텅 손으로 잘라 넣고 우리 엄마 자존심인 된장만 넣으면 멸치로 국물 안 내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1 마당 한쪽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는 효재의 가장 큰 살림 밑천이다. 깨진 항아리, 장독대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모아두었는데 요리 담아내는 접시로도 손색없을 정도다.
2 가지는 길쭉길쭉 가지런한 모양으로 골라 사다가 4등분으로 칼집을 내 모양을 살려 말린 뒤 그대로 볶아 나물을 만든다. 말린 나물을 요리로 만들어 먹다 보면 사다가 바로 해 먹는 것은 물컹물컹 맛이 없어 못 먹을 정도라고.

장독대 옆 깨진 기왓장과 맷돌 자리에 가지 올린 접시를 올려놓으니 멋스러운 수묵화와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담아놓으니 한 폭의 수채화가 된 말린 가지나물
“가지는 잔뜩 사다가 여름 장맛비 올 때 말고 따스한 가을볕에 말려야 맛있어요. 가지는 채반에 널어 반건조시켰다가 냉동실에 넣어두면 두고두고 맛있게 요리 해 먹을 수 있죠. 간장, 까나리액젓, 깨 등 갖은 양념을 만들어 30분 정도 재었다가 기름 두르고 볶으면 돼요. 이렇게 완성한 가지나물은 커다란 접시에 담아 가지런히 켜켜이 쌓아 예쁘게 모양 만들어 상에 내요. 나는 음식 할 때 세 가지를 중요시하는데 우선 재료가 좋아야 되고, 만드는 사람의 정성, 마지막이 예쁜 그릇에 담기예요. 큰 접시에 이렇게 가지나물을 멋들어지게 담아 상에 낸 뒤 손님 앞접시에 가위로 잘라 놔주면 다들 무척 좋아하고 집에 가서 따라 하더라고요.”

진행 / 이지혜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