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일이긴 했지만, 또 한명의 불세출의 스포츠 스타가 은퇴했다. 이번엔 테니스 코트다.
☞ 애거시 '21년 코트' 떠나 그라프 품으로 눈시울 적신 작별
허허. 가을 초입에 맞닥뜨린 이 소식이 나를 다소 허하게도 만든다.
안드레 애거시. 바로 그의 은퇴 소식. 21년간의 선수생활을 접었단다. 36세, 한국나이 37. 테니스 플레이어론 환갑을 한참 지난 나이.
그는 내가 좋아했던 마지막 테니스 플레이어였다. 그 이후 좋아하는 테니스 플레이어가 없다. 뭐 샤라포바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 아우라가 확연히 다르다고 대답하련다~ 즉, 현재의 샤라포바와는 감정을 담는 그릇이 다르다.(샤라포바는 내게 공을 좇고 치는 테니스 플레이어로 인식되기 보다는 모델이나 연예인 같다.)
사실 같은 날 '참 지식인' 리영희 선생님의 50년 '지적 활동' 마감 선언 소식( ☞ "이제 펜을 놓습니다" )도 들렸지만, 솔직히 내 맘을 더 흔들어 놓은 건 애거시의 은퇴 경기 소식이었다.
쨌든 세월을 비껴갈 수 없는 생. 한 시대의 접힘. 사랑도, 미움도.. 영원한 것이 없듯, 피고 지고 명멸하는 어떤 흐름.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애거시에게 테니스는 생, 그 자체였을 것이다(라고 나는 지레짐작한다).
경기에 진 뒤 애거시의 침통한 표정. US오픈 공식홈페이지 캡쳐
소년, 애거시를 만나다
옛날 같지 않지만, 테니스(경기 중계)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룰도 모른 채 봤던 테니스 경기는 '미스터 아이스' 비외른 보리, '코트의 악동' 존 매켄로, '철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지미 코너스, 슈테피 그라프, 보리스 베커 (아 그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ㅎㅎ) 등을 거치며 흥미진진한 소일거리가 됐다. 주말에 한번씩 테니스 경기를 중계할 때면, 이들의 몸짓에 열광했고 그들이 치는 볼에 일희일비했다.
그렇다고 야구처럼 푹 빠져지낼만큼 나는 테니스 자체에 호의적이진 않았다. 그저 당시 야구를 중심으로 농구, 배구, 씨름, 축구, 각종 스포츠에 곁눈질하며, 두환이 짜식의 '3S정책'에 편승(?)한 정도에서 테니스 경기를 지켜봤다. 네트를 중심으로 공을 따라가는 격렬한 몸짓의 행위인 테니스를 진지하게 고찰한 것도 아니다. ^^;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좋아하는 플레이어가 생기게 마련. 나는 유독 코트에서 땡깡부리고 육두문자를 내뱉는 등 악동짓 하는 존 매켄로를 좋아했고, 그 다음 타자가 애거시였다. 혜성처럼 나타난 애거시. 국민학교 혹은 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이. 짜식 잘 생긴 게 맘에 들었다. 당시만 해두 펄렁펄렁 휘날리는 금발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에겐 앞선 테니스 플레이어에게서 보지못한 화려함이 있었다. 귀걸이를 했고 가슴에 털은 또 왜 그리 많누ㅋㅋ 여느 플레이어들과는 다른 그. 신기했다. 그런 그가 87년 한국에도 왔었다. KAL컵 대회에 출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금발 휘날리던 애거시를 표지모델로ㅎ 이런 시절도 있었다. 그땐 그랬지~
애거시의 이미지도 매켄로 처럼 껄렁껄렁했다. 그런 이미지를 좋아한 탓인지 몰라두 잘 생긴 놈이 반항아면 더욱 그럴 듯해 뵈는 착시에 넘어간 것이다. 그 가운데 90년대 이른바 반항이 적극적으로 소비된 시대. X세대란 말이 나부꼈고, 애거시의 이미지는 시대와 맞아떨어졌다.
나태하고 부실한 경기 운영으로 뒷말도 많았던 그였지만, 그래서 '슬럼프'란 이름의 시기도 거쳤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92년 윔블던 우승부터 호주오픈 4회, US오픈 2회, 프랑스 오픈 1회 등 총 8차례의 메이저 우승, 그리고 '커리어 그랜드 슬램'. 8차례 우승 중에 5번을 29세 이후에 석권했단다. 테니스 선수에게 29세는 환갑 나이라 불린단다. 그는 통산 60승을 거뒀다. 96아틀랜타 올림픽 우승과 데이비스컵 우승까지. 화려하다 화려해. 니 똥 굵은 정도가 아니라, 와이드 릴리즈 해도 될 정도다.^^;
반항아에서 은퇴까지
물론 그 화려한 이력의 뒤에는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있다. 95년 세계랭킹 1위에 오른 그였지만, 97년 브룩 쉴즈와의 결혼이후 랭킹 141위까지 급전직하했다. 거의 망가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애거시는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군소대회를 떠돌며 1년 만에 랭킹을 6위로 끌어올렸고, 99년엔 1위로 복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가끔 팬 서비스~ 테니스 이외의 스캔들로 미디어의 가십 욕구를 채워줬다. 해외 유명스타와의 스캔들 혹은 로맨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의 짝짜꿍으로 가십란을 채우던 그는 브룩 쉴즈와 결혼을 했다. 선남선녀의 만남. 뭐 그러다 이혼하면서 2001년에는 같은 테니스계 스타인 슈테피 그라프와 결혼을 했다. 부럽더라. 나는 한번도 몬해본 결혼, 지는 두번이나 하구..^^;;
세월은 그렇게 흘렀고, 언제부턴가 그는 광을 내기 시작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으나 금발 휘날리던 반항아의 머리가 반질반질해졌다. 햇빛에 반사까지ㅋ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빛이 반사될까 우려해서인지, 애거시는 두건을 썼더랬다. 어라, 그러더니 그 두건이 유행이 됐다. 개나소나 나나 두건두건. 그런데 두건 쓴다고 다 애거시 되냐 ㅋㅋ
흠. 두건 쓴 애거시. 멋지군. 잘 났어 증말~~~
나중에 이런 얘기도 들었다. 그의 이미지는 백인 보수주의의 욕망으로도 소비됐다는 것. 툴툴대고 반항기 넘치던 애거시가 부진하자 비난이 쏟아졌다. 게으르고 나태한 X세대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인식되던 그에게 가해지는 보수파들의 공격. 그러나 재기에 성공하면서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또 하나의 준거틀로 재활용한다. 세상 모르고 날뛰던 망나니가 건전한 백인남성으로 변신했다는 것. 그의 재기를 X세대에 대한 교화의 틀로 이용하기도 했다.
뭐 내가 그 '건전하다'는 백인남성들의 모럴을 상관할 바도 아니고 애거시가 나의 롤모델도 아니었으니 이런 것까지는 고려해서 그를 대할 필요는 없었고. 쨌든 그는 내가 관통한 한 시대를 풍미한 테니스 플레이어로서, 그의 '은퇴'가 내 마음의 연못에 작은 파장을 던진다.
테니스코트, 21년 롱키스, 굿바이~
애거시는 은퇴 경기에서 졌다. 뉴욕의 US오픈 남자단식 3라운드 독일의 벤야민 베커에게 1-3 패배. 하지만 2만 관중의 4분간의 기립박수.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21년 영욕을 마감하는 순간의 축하라면 말이다.
US오픈 공식홈페이지가 전하는 아가시 소식 ☞ Tennis’ Best Friend: Agassi Goes Out in Glory
US오픈 공식홈페이지에 나온 애거시 기사 캡쳐
더구나 그는 진통제까지 맞아가며 투혼을 발휘했다고 한다. 고질적인 허리와 등의 통증으로 1회전부터 진통제를 맞으며 코트에 나선 그였다. 애거시 트레이너는 "허리 통증이 심한 걸 알기에 그를 코트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애거시였으니 경기가 끝난 후 얼마나 감정이 북받쳤을까. 그는 후련했을까, 아쉬웠을까. 물론 그의 감정을 단순하게 하나의 어휘로 설명하는건 불가능하겠지.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자니 내 마음도 애틋해진다. 내가 그의 은퇴를 독려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애거시는 패한 뒤 코트인생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듯,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렸고 매진 관중 2만여명은 모두 일어나 4분간 박수로 제2인생을 축하했다. 애거시는 이에 코트로 걸어나와 관중석 4면을 향해 '전매특허'인 양손을 이용한 키스를 뿌려댔다. 그는 장내 마이크를 잡고 "코트의 스코어보드는 내가 졌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지는 21년간 내가 얻었던 것을 다 알려주지는 않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했다."(한겨레)
허허 그래. 원하든 그렇지 않았든, 누구든 떠나게 마련이다. 독일 월드컵 때 지단의 마지막 모습이 있었다면, US오픈엔 안드레 애거시가 있었네. '아가시(씨)'라고도 발음했던 애거시. 은퇴 이후 호텔 사업을 할 거란 보도도 있었고 현재 자택이 있는 라스베이거스와 LA 등에 청소년들을 위한 대규모 교육 시설을 운영하고 있단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놓았을테니 먹고 살 걱정은 않겠지만, 그래도 테니스 코트는 그의 모든 것 아니었을까.
그 시절과는 다른 형태로 현재 소비되고 있는 '마리아 샤라포바' 등의 현재 테니스 스타와 비교한다면, 애거시의 은퇴는 정말 다른 감정을 유발한다.
아마 김응룡 감독도 통탄할 일이겠지? 지단도 없고, 애거시도 없고...ㅎㅎ
은퇴가 만든 초가을의 정서
그러고보니 두 사람은 또 다른 공통점. 뭘까ㅎㅎ . . . . . . . . . . . .
그건 바로, 세월을 비켜가지 않은 채 넓어진 두 사람의 이마. 그 이마가 넓어지고 빛을 더하게 된만큼 두 사람은 세월을 머금고, 이마의 넓이만큼 세상을 넓게 보게 되진 않았을까. 세월은 무상하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보상도 남기게 마련이다. 팬들에게 안겨준 기쁨과 희열, 이어진 순환고리. 팬들의 성원과 격려가 그들을 또한 더욱 빛나게 했음이리라.
애거시의 고별사 연장. "스코어보드는 내가 졌음을 말하고 있으나 지난 21년간 얻은 것은
알지 못한다. 여러분의 사랑은 코트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나를 이끌었고, 여러분이 준 격려는 나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때론 나락의 순간에서도
구했다. 또한 여러분의 관대함 덕분에 꿈에 도달했고, 여러분의 관대함이 없었다면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라운드와 코트에서 흘린 땀방울과 몸짓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은퇴는 더욱 아쉬울 법도 하다. 나는 그들의 드넓은 이마가 사랑스럽다.
한편으로 두 사람도 수줍게 만났던 기억도 있나보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지단이 우연히 안드레 애거시와 같은 호텔에 머물게 됐는데, 애거시를 틈틈히 지켜보았지만 수줍어서 차마 말을 걸지 못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한겨레 21)
은퇴. 잘 하고 볼 일이다. 애거시는 지난 6월 윔블던에 출전해 "윔블던에서 뛰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며 US오픈은 내 선수 경력에서 최후의 대회가 될 것이다. 허리 통증에서 벗어나 마지막이 될 윔블던을 즐기기 위해 지난 몇 달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했다. 지단도 "지금까지 해 온 것만큼 잘할 수 없을 것 같아 은퇴를 결심했다"며 "더 이상 축구를 즐기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지단은 마지막 연봉을 유소년 축구를 위해 쾌척하는 '아름다운 퇴장'을 했다.
그리고 은퇴하려면 이들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스포츠 플레이어들의 연이은 은퇴가 이 초가을의 정서를 애틋하게 만든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세월의 흐름, 한 시대의 접힘을 절감한다. 그들도 한때는 갈퀴머리를 휘날리며 초원을 내달리던 젊은 사자였을텐데. 세월을 이기는 힘은 누구에게도 없다. 정글처럼 무성했던 그들의 머리에는 벌목한 나무들처럼 한올한올 머리카락이 빠지고, 강철같던 다리는 점점 탄력을 잃어갔을 터이며, 무엇보다 폭주기관차와도 같던 체력은 폐차 일보직전 직전만큼 후달렸을 것이다. 에휴~
물론, 그만큼의 세월이 그들의 나이테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줬을지도 모르지만.
모쪼록 그들의 은퇴와 새로운 인생에 축복을. 이 글은 그래서 내게 감정을 덜컥이게 한 그들에게 보내는 가을 연서다. 흐린 가을 하늘은 아니지만, 이 가을에 쓰는 연애편지.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가슴에 덜컹덜컹 걸리고 숙제처럼 남는 건, 그 스타플레이어들의 뒤에 있던 사람들, 이른바 '무명'이란 딱지를 붙이고 은퇴했던 이들의 이름이다. 그들에게 '이름이 없음'(무명)이라는 딱지를 붙여준 건 누구였을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뜻이지만, '무명'은 때론 어쩐지 거슬린다. 애거시의 은퇴 소식 뒤로 나는 한편으로 그들을 생각한다.
어쨌든, 꽃이 진다고 그대들을 잊을리 없다.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다손, 그 흔적들까지 지우진 않을테니.
그런데 나는 언제쯤 은퇴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물론 누구도 새겨듣지 않을 소식이지만, 내 마음 칭구들은 알겠지. 내가 은퇴하는 그 마음. 좋다, 아그들아! 언제일지 몰라도 은퇴하면 내가 쏜다. 기둘리소.
마지막으로, 안녕, 애거시 형아. 좋겠수. 부럽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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