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맞추기 퍼즐을 만나다.
내게 가장 즐거운 오락은 퍼즐이다.
난 모든 형태의 퍼즐 게임을 좋아한다. 낱말 맞추기 퍼즐도 있고 많은 종류의 가로세로 퍼즐들도 있고, 테트리스류들도 퍼즐의 또 다른 형태이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조각 맞추기 퍼즐 (Zigsaw puzzle)이다.
오락종류의 하나로서 puzzle이란 영어단어가 ‘골치 아프게 하다’, ‘곤혹스럽게 하다’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은 paradox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보면 오락게임을 하면서 한번씩 ‘이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게 아냐…..스트레스를 받기 위해서 하는 거야’ 라며 승부욕에 몸을 떨고 그만두지 못하는 중독성에 괴로워 해 본적이 있는 것을 떠올리면 이 퍼즐이 갖는 모순된 이중적 의미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우연한 기회에 이 조각 맞추기 퍼즐에 손이 가게 되었다.
아마도 어떤 물건을 사고 사은품으로 퍼즐을 받았던 것 같은데 그걸 한번 해보고 나서는 그 묘한 매력에 빠져서 점점 더 난이도를 높여가며 작품활동 (?)을 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첫 시도는 눈이 무지 많이 내리던 스웨덴에서 일하던 어느 겨울 휴가 중이었다.
북유럽의 겨울은 잔인하다. 평균 일조시간은 많으면 4시간 정도…..거기다가 위도가 높은 관계로 눈도 많다. 며칠씩 쌓인 눈은 무릎을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고 감질나는 햇빛양은 쌓인 눈을 녹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자연히 바깥 활동을 할만한 여건도 안되기에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북유럽 사람들은 여름에는 자연을 만끽하며 대부분이 스포츠에 열중을 한다. (하다 못해 자전거 타기라도) 여름의 북유럽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기온은 높으나 건조한 공기가 축축한 우리나라의 무더위와는 다르게 상쾌함을 주기도 한다. 거기다가 여름에는 일조시간이 길어져 소위 말하는 ‘백야(white night)’현상이 생겨 늦은 시간까지도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유달리 햇볕을 싫어하는 나에겐 이곳에서의 여름은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고, 오히려 겨울이 오기를 기다리는 편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로 접어들면 벌써 어둑한 느낌에 불을 켜야지 실내에서 생활을 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곳에서는 크리스마스 휴가가 학생이나 직장인들에게 가장 길고 성대한 휴가의 시간이다. 2주정도 쉬게 되는 이 시간은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지루하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제일 큰 단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나도 이 시간들이 보내기 힘든 시간이라고 여겨졌으나, 퍼즐을 손에 대고 난 이후로는 하루하루가 기다림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퍼즐 ..... 그 고통의 시작
한 해 겨울 크리스마스 휴가를 온통 퍼즐 맞추기를 하면서 보냈던 기억을 한번 더듬어 본다.
맨 처음 퍼즐의 포장지를 뜯으면 분류작업을 해야 한다.
처음엔 멋모르고 무턱대고 시작했었지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나름 노하우가 생기게 된다. 표지의 그림을 유심히 눈에 각인 시키면서 가장자리에 단면으로 끝나는 퍼즐들을 골라낸다. 다른 퍼즐들은 4개 면에 다 홈이 나 있지만 테두리를 형성하는 퍼즐들은 3면에만 홈이 있기 때문에 골라내기 쉽다.
퍼즐은 굉장히 분석적이면서도 관찰력을 요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가장 자주 다루었던 퍼즐은 1000 피스 짜리의 크기였다. 처음엔 이 천 개의 피스들을 다루는 것이 너무나 벅찼다. 나름대로 뭔가 원칙이 있어야 끝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여러 개의 용기들을 총동원한다. 그 용기들은 재활용하는 버터통들이 주로 쓰였고 각 통에 그림에 따른, 그리고 위치에 따른 색깔들을 분류해 놓는다. 예를 들어 빨간색이 많은 조각들, 푸른색이 많은 조각들, 하늘에 해당되는 조각들, 나무에 해당되는 조각들, 사람의 모습의 조각들, 땅에 해당되는 조각들…..등 나름대로 1차 분류를 하여 버터통에 담아둔다.
대 분류이기 때문에 통은 대개 5~6개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 분류를 끝내면서 도저히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은 애매한 회색분자들은 따로 정리를 해둔다.
퍼즐 작업을 하기 위해 가장 요구되는 것은 넓은 공간이다. 퍼즐 자체야 완성을 하게 되면 가로, 세로 1미터를 넘지 않지만, 분류된 버터통 들이 손 닿을 지점에 있어야 하고, 추가로 분류를 더하게 되면 버터통의 수는 늘어나야 하며, 이런 저런 피스들을 비교하고 널어놓기 위한 공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공간을 확보하지 않고 어설프게 시작을 하면 아주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여태껏 했던 결과물을 다른 자리로 옮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분류들을 위한 여분의 버터통 들도 충분한 수가 비치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튼튼한 허리와 지치지 않는 체력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2차 분류를 할 때는 좀 더 세분화 된 기준이 적용 가능하다. 눈에 확실히 들어오는 부분들이 있으면 그 부분을 먼저 시작한다. 예를 들어 벽돌집이라던가, 어떤 인물에 대한 조각들은 색깔이나 무늬가 구별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독특한 무늬가 있는 조각들을 먼저 골라내어 부분 조합을 한다. 그러면 한구석 부분이 조금 완성이 되고 그 완성된 파트를 토대로 조금씩 색상 변화와 명암의 진행에 대해 연구를 하며 조각을 골라낸다. 1차 분류에서는 순수하게 분류만 한다면 2차 분류에서는 분류작업과 맞추기 작업이 동시에 진행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특이한 무늬들이 있는 부분을 맞추고 나면 그 다음은 막다른 길에 다다른 듯 조금은 당황스럽다. 아직도 몇 백개씩 남아있는 퍼즐조각들을 보며 잠시 짧은 한숨을 뱉어 내기도 한다. 그런 다음은 비교적 넓은 부분을 한번 건드려 본다. 이때는 무늬 보다는 색깔 별로 작업을 한다. 3차 분류에서는 2차 분류로 이미 분류가 끝난 퍼즐들을 다시 색깔의 차이에 따라서 좀 더 세분화 하여 줄을 세운다.
이때 그 색깔의 변화 (Gradation)를 조금씩 찾아가는 작업은 참으로 경이롭기 까지 하다. 그냥 그림으로, 사진으로 봤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섬세함이 이렇게 조각으로 나누어 놓고 그 조각을 섬세한 색상의 명암과 채도의 차이를 감지해서 나열을 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정교한 작업인지,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놀라게 된다.
색깔에 의한 구분을 할 때 가장 난감한 대상들은 하늘, 바다, 숲……등이다.
이들에게서 어떤 법칙성을 찾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지되어 있는 사물은 고정된 조명에 의해 일정한 명암을 나타내지만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이나 제멋대로 맑기도 하고 구름지기도 한 하늘 조각들에게서 일관성을 찾아내기란 아주 힘든 일이란 걸 알게 된다.
이때는 색깔도 보게 되지만 형태도 유심히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퍼즐 조각들이란 아주 미묘한 차이를 가질 뿐 형태의 차이에 의해서 그 지점을 찾아 낸다는 것도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이 퍼즐 작업을 하고 있으면 끊임없는 좌절에 부딪치게 됨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시도도 해보고 저렇게 시도도해보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난관들이 자주 나타난다. 그럴 때는 단지 인내하면서 조각 하나 하나 모두를 대조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수고를 하지 않겠다고 거부를 하면 끝내는 이 퍼즐을 완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퍼즐이란 오락은 아주 잔인하다.
3차 분류까지 끝을 냈다면 끊임 없는 재 분류 작업을 해야 한다.
물론 맞추는 작업과 동시에 분류를 하면서 내가 처음에 얼핏 보았던 조각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어느 부분일 것이라고 판단했던 조각들이 예상치도 않는 부분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붉은 색으로 보고 붉은색 분류 통에 넣어 두었는데, 노란색 명암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런 경우를 볼 때 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된다.
천 개의 조각들 중 반 정도를 맞춘 다음이라면 저으기 성취감이 들기도 한다.
이 정도의 단계에 다다르면 포기라는 것은 아예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 순간까지 쏟아 부었던 노력과 시간을 떠올린다면 오기가 생겨서라도 반드시 끝을 내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게 된다. 그림이 조금씩 드러날수록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은 더 늘어나게 되고 중독성은 더더욱 강해지게 된다. 주위에서 걱정 어린 시선으로 한마디씩 하지만 나에겐 이 작업을 끝내는 일 이외에는 어떤 것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새벽시간이 된 줄도 모르고 깨어 있기도 하고, 어차피 날이 계속 컴컴하기 때문에 시계가 없다면 시간의 흐름은 아예 감지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해도 온통 머리 속엔 퍼즐 조각들만이 둥실 떠다닐 뿐이다.
빨리 내일이 와서 더 많은 작업을 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피곤한 몸을 누이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서 부족하나마 새어 들어오는 태양빛에 조금씩 형체를 잡아가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불빛아래에서 볼 때 와는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잠을 자고 일어나는 모든 것이 오직 이 퍼즐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란 걸 나도 몰랐던 것이다.
좀 쉬운, 그리고 명확한 특징이 있는 퍼즐들을 서둘러 끝을 낸다.
그런 다음 미뤄 두었던 골치 아픈 부분들을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이 순간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끼워 맞춰보는 조각들의 어긋남은 더 잦아지게 된다.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허리의 통증은 잠시도 멈추질 않는 고통스런 시간들이 찾아온다. 그만큼 끝이 다다랐다는 신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정도의 완성을 하려면 물론 난이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3~4일 정도는 소요가 되었던 것 같다. 어떤 그림들은 이틀 만에 완성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쉬운 그림들을 완성하고 나면 그다지 큰 성취감이 보장되지 않기에 힘들더라도 어려워 보이는 그림들을 택하곤 했다. (지독한 경우는 꼬박 일주일이 걸린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간의 끈질긴 나와의 싸움, 그리고 작은 종이 조각들과의 싸움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얼마나 분석적으로 이 작업에 임해야 하는가가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구도, 색상, 무늬 등 어떤 것이든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요소가 있으면 그것을 토대로 이리 저리 자리를 맞춰보며 분류를 할 때는 아주 겸허하면서도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 그저 큰 그림을 조각 내었을 뿐인데도 나에게 그런 정신적 노동과 유희를 주는 상대가 신통하게 여겨질 따름이었다.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인내심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목표를 위해 이렇게 꾸준히 매진해 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하는 반성을 함께 하면서 말이다. 웬만큼 눈물이 나게 눈이 따갑고, 허리가 아파도 완성하겠다는 일념으로 마치 마약을 들이킨 사람처럼 그 고통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작업에 임하는 내 모습을 보며 동기유발이란 참 무서운 것이 구나를 생각했다.
종이조각들에게서 인생의 진리를 배우게 되며.....
마지막으로 몇 개 남지 않은 조각들만 남았다.
스무개 정도 남았을 때의 쾌감은 이 작업에서 가장 큰 것이리라. 이 정도 숫자만을 남겼을 때는 웬만한 그림의 흐름을 다 꿰고 있기 때문에 형태만 보아도 어느 조각이 어디에 맞을 거란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 조각을 집어 들고 목표지점에 꽂았을 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진다. 때로는 노래도 나기도 하면서 자신을 칭찬해주게 된다.
이제 10개 미만의 피스가 남으면 순전히 조각들의 생김새 만으로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낼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한번의 반전이 있는 경우들이 있다.
몇 조각 남지 않은 조각들을 빈 곳에 아무리 끼워 맞춰도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이미 한 조각을 엉뚱한데 끼워 놓았기 때문에 정작 들어가야 할 조각에는 아무것도 맞지가 않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나는 인생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미 정해져 있는 모양인데 내가 우겨서 엉뚱한데 집어넣어놓고선 다른 데 가서는 맞는 조각이 없다고 불평을 하는 그 모습에서 말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본다.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인데 다른 운명을 끼워 넣고서는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원래의 운명이 나타나서 이전의 운명을 밀어내게 되는 경우……그때는 순순히 자리를 내어 줄 수 밖에 없다. 원래 내 자리는 거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두 조각이 내 손에 들려져 있을 땐 내 몸에는 떨림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두 조각을 빈자리에 끼워 넣게 되면 며칠간의 외롭고 괴롭던 시간들이 드디어 끝을 고하게 된다. 너무 기쁜 순간이다. 그 완성된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의 작품을 뿌듯한 눈으로 여러 번 보게 된다. 그러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을 생각하며 ‘아…..요놈, 요 한 조각 때문에 시간을 무지 허비했지’, ‘푸하…..여기에 들어갈 거 였는데….왜 그렇게 내가 우겼을까?’ 등등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불을 밝히며 잠을 멀리한 그 밤들 동안 내 손에서는 수많은 명화들이 다시 태어났다.
이 퍼즐 작업을 끝낼 때 마다 나는 삶에 대해 좀 더 겸허해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게 때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보여지는 대로 다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 운명이란 것에 대해 때로는 길을 내주기도 해야 된다는 것…..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고통으로 점철된 작업시간들……작품 (난 계속 작업, 또는 작품 이라고 이 퍼즐을 부르고 있다 ^^)을 완성한 다음의 성취감과 허탈감…..부수적으로 따라 오는 삶에 대한 생각들….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완성하면서도 이러한 느낌을 가질까? 그렇다 … 나에게 이 퍼즐이란 어떤 의미에서의 창작 활동이리라. 오락이라고 하기엔 그 시간과 노력의 대가가 너무도 크기 때문에 말이다.
타국에서의 침침한 나날에 대한 기억과 함께 묻혀졌던 나의 퍼즐에 대한 열망이 몇해 전 한국에 돌아와서 심하게 불붙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실력이 나아져서 인지 확실히 작품을 완성하는 속도가 빨라져 거의 스무개에 가까운 퍼즐들을 해 치웠던 것 같다. 내 동생이 내가 무슨 부업을 하는 거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
요즘엔 통 시간과 공간이 허락하지 않아 이 퍼즐들을 가까이 하고 있지 못하지만 항상 그것에 대한 열망은 내 마음 한곳에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나이가 들어 내가 소일거리를 해야 한다면 아마 하루 종일 퍼즐에 매달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때는 좀 더 인생을 더 살고 난 후라, 퍼즐을 맞춰 가면서 나의 인생의 퍼즐에 대한 생각들도 같이 하면서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와 대화하듯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이 훌륭한 오락거리에 감사함을 느끼며 나의 퍼즐 예찬론을 접으려 한다.
출처 : 흔적은 있으나 실체는 없는...
글쓴이 : Mananochvi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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